최근 국제 사회는 건축물의 전 생애주기(Life Cycle)를 아우르는 탄소배출량 평가와 저감으로 그 시야를 넓히고 있다. 특히 건축자재 생산 및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재 탄소(Embodied Carbon)가 건축물 전체 탄소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면서, 전 생애주기 관점의 탄소배출량 평가는 이제 탄소중립 건축 실현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건축물의 탄소배출 저감은 준공 이후보다 설계 초기, 즉 인허가 단계에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어떤 구조재와 마감재를 사용하고, 어떤 형태와 규모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의 상당 부분이 고착된다. 현행 인허가 제도가 구조설계도서 및 에너지 절약 계획서 등의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듯이, 이제는 건축물의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을 사전에 평가하고 보고하는 것도 인허가의 필수 요건으로 편입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건축물 인허가 단계에서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를 의무화하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를 비롯한 약 10여개의 국가 및 도시에서 건축물LCA를 법적으로 의무화해 시행 중이다. 네덜란드는 2018년부터 MPG 제도를 통해 신축 주거건축물 전체와 연면적 100㎡ 이상의 신축 사무용 건축물에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하였으며, 프랑스는 2022년 RE2020 기준을 통해 주거건축물과 사무·교육시설에 대해 이를 의무화했다. 덴마크는 2023년 BR18 법규를 통해 모든 신축건축물에 건축물LCA 수행을 의무화하되, 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에는 탄소배출량 상한선(12kg CO₂e/㎡/년) 규제를 추가로 적용했다. 이들 국가는 건축자재 생산부터 해체·처리 이후 단계까지 포함하는 전 생애주기를 평가 범위로 설정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시행 중인 국가에 더하여 일본과 유럽연합(EU) 전체 회원국이 건축물LCA 의무화를 확정하거나 강력히 추진 중이다. 일본은 2028년부터 연면적 3,000㎡ 이상의 대규모 신축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물LCA를 의무화하기로 확정했으며, EU는 2024년 발효된 건축물 에너지 성능 지침(Directive 2024/1275)에 따라 2028~2030년 전후로 모든 신축건축물에 건축물LCA를 공식 의무화할 전망으로, 각 회원국은 현재 이를 자국법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종합하면 건축물 인허가 단계에서의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 의무화는 이제 일부 선진국의 선도적 실험이 아니라 전 세계 건설산업의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녹색건축인증제를 통해 건축물의 전 과정 평가를 일부 반영하고 있으나, 이는 인센티브 기반의 자발적 인증 체계에 머물러 있다. 건축물 인허가 단계에서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를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제도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세계 여러 국가들이 이미 시행 중이고 주요국들이 도입을 확정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여전히 자발적 참여에 의존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전환이 시급하다. 물론 모든 건축물에 대한 일괄 의무화는 전문 인력 양성, 업계 역량 제고 등 충분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단계적 접근이 현실적이다. 우선 공공건축물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대상으로 인허가 단계에서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보고서 제출을 시범 도입하고, 민간 건축물로 점차 확대해 나가는 로드맵이 필요하다. 네덜란드는 연면적 100㎡ 이상, 일본은 3,000㎡ 이상을 우선 적용 대상으로 설정하는 등 각국이 자국 상황에 맞는 단계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변화는 반드시 중앙정부의 일괄적인 제도화만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공건축물부터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 보고서 제출을 자체적으로 요건화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영국의 런던이나 캐나다의 토론토·밴쿠버가 중앙정부에 앞서 도시 단위로 건축물LCA를 의무화한 사례는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제도 변화의 선도자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공공부문이 먼저 실천하고 그 성과를 축적해 나갈 때 민간으로의 확산과 국가적 제도화를 위한 실질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다행히 국내에는 이미 탄소중립건축인증(ZCB인증)과 같이 건축물의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민간 인증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기반을 활용하면 공공기관과 지자체 단위에서도 인허가 조건에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 결과 보고서 제출을 요건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나아가 저탄소 설계에 대한 용적률 완화나 사업비 지원 등 인센티브와 연동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면 탄소중립 건축을 견인하는 실질적 정책 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물 인허가 단계에서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 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추가가 아니다. 이는 건축물 설계 단계에서부터 탄소중립을 핵심 가치로 내재화하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벌써 10개국이 이미 그 길을 걷고 있고, 주요 선진국들이 빠르게 합류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우리나라도 공공기관과 지자체의 선도적 실천을 발판으로 삼아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건축물 부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한국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한국건설신문(http://www.conslov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