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40여 개 국가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이 가운데 다수는 이미 법제화 단계에 들어섰다. 건축물 단위에서는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을 평가하는 인증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반면, 정작 온실가스 배출의 복합적 결과물인 '도시' 단위에서는 그 성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체계가 그동안 부재했다. 탄소중립 스마트시티를 표방하는 지자체는 늘고 있지만, 그 도시가 실제로 얼마나 탄소중립에 다가섰는지를 수치로 증명할 방법이 없었던 셈이다. 선언과 계획만으로는 도시의 탄소중립을 완성할 수 없다. 정확한 측정과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실현된다. 도시는 건축물의 운영뿐 아니라 사람과 화물의 이동, 에너지의 생산과 공급, 도시림과 녹지의 탄소흡수까지 다양한 활동이 복합적으로 얽힌 시스템이다. 도시의 탄소중립 성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이 모든 활동을 건물·수송·에너지·흡수원 등 부문별로 나누어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을 정량적으로 산정하고, 이를 종합해 도시 전체의 탄소중립 수준을 지표화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건축대지 경계를 기준으로 건물 내부의 활동과 도시 기반시설의 활동을 구분하고, 부문마다 서로 다른 산정 기준과 데이터를 적용해 객관적인 수치로 환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량평가 체계가 갖춰져야만 비로소 도시 단위의 탄소중립을 하나의 제도로서 운영하고, 지자체의 정책과 인센티브에 연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실제로 국내 일부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도시 단위 탄소중립 성능평가 체계를 자체적으로 검토·개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향후 제도화 논의에 중요한 실증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이미 도시 단위 탄소회계(Carbon Accounting) 표준화 작업이 상당히 진전되어 있다. 코펜하겐, 뉴욕 등 GHG Protocol for Cities(GPC)를 채택한 도시들은 에너지·교통·폐기물 부문의 통합 인벤토리를 매년 갱신하며, 도시 데이터 플랫폼을 통해 배출량을 시민에게 공개한다. 반면 국내 지자체의 상황은 다르다. '탄소중립 기본법'에 따라 각 지자체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지만, 정작 계획의 근거가 될 배출량·감축량 데이터는 부처와 기관별로 흩어져 있고 형식조차 제각각이다. 정책 담당자 입장에서는 조례를 만들고 목표를 세우는 일보다, 그 목표의 근거가 될 숫자를 확보하는 일이 훨씬 더 큰 난관이다. 부문마다 소관 기관이 다르고 데이터의 형식과 갱신 주기, 측정 방식조차 통일되어 있지 않은 탓에, 실무자는 매번 자료를 새로 수집하고 대조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본계획이 선언한 목표가 실제 개발·정비 사업 단계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구단위계획, 도시개발사업, 정비사업 등 도시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행계획 수립 과정에는 정작 탄소중립 성능평가 항목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계획이 제시하는 상위 목표와, 실제 필지·구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인허가·설계 과정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단위계획 수립 및 변경 단계에서부터 탄소중립 성능평가를 필수 검토 항목으로 반영한다면, 계획 수립 초기부터 저탄소 대안을 비교·검토할 수 있고 기본계획의 목표를 실제 공간 단위에서 구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마련된다. 정교한 평가 기준을 설계하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지자체 현장에서 실제로 운용 가능하게 만들고 기본계획과 실행계획 체계 전반에 접목시키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 이유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기대된다. 여러 기관에 흩어진 이질적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매칭하고, 실측데이터의 공백을 신뢰할 수 있는 추정값으로 채우며, 부문 간 중복 계산이나 데이터 품질 이상을 자동으로 검출하는 일은 AI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디지털트윈 기술을 통해 도시 전체를 가상 공간에 구현하고 건물·교통·에너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연동함으로써, 정책 시행 전에 다양한 시나리오의 탄소감축 효과를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위성영상 기반 모니터링 역시 유용한 보완 수단이다. 도시림이나 녹지처럼 지상 조사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흡수원 부문은, 위성영상을 AI로 분석해 식생 면적과 변화 추이를 주기적으로 자동 추적함으로써 현장 실측의 공백을 상당 부분 메울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 자동화에 디지털트윈과 위성 모니터링이 더해지면, 도시 단위 탄소중립 평가는 일회성 진단을 넘어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살아있는 관리 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 사람이 손으로 수십 건의 자료를 대조하던 작업을 AI가 표준화된 절차로 신속하고 일관되게 수행한다면, 평가의 신뢰성은 높이고 실무 부담은 크게 줄일 수 있다. 도시 단위의 탄소중립 평가는 이제 막 걸음을 떼는 단계에 있다. 이것이 선언에 머물지 않고 도시 곳곳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교한 평가체계 못지않게 그것을 실제 데이터로 구현해낼 기술적 인프라, 그리고 기본계획부터 지구단위계획에 이르는 실행 체계 전반에 걸친 제도화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AI는 그 인프라의 핵심이 될 것이며, 도시 단위 탄소중립 평가기술과 AI의 결합, 그리고 이를 제도로 정착시키는 노력은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방향이다. 출처 : 한국건설신문(http://www.conslove.co.kr)